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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자
몽골은 독립 국가 연합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 위치해 있는 몽골은 조그마한 국가이지만 한때는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이루었다. 몽골 제국의 세력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1200년대 후반 몽골의 영토는 동쪽으로는 중국해로부터 서쪽으로는 유럽의 가장자리인 흑해에까지 뻗어 있었다.
몽골인들은 수천년에 걸쳐 유목 생활을 하면서 아시아 평원의 중심부에서 살았다.
오늘날에도 일부 몽골인들은 그들의 조삼들이 했던 것처럼 짐을 운반하는 동물에 그들의 가제 도구 등을 싣고 평온을 옮겨 다니면서 살고 있다.
몽골인들은 서기 1206년 추장이었던 테무친이 지도자인 칸으로 뽑힘으로써 유명해지게 되었다. 그에게는 또한 세계의 지도자라는 의미인 칭기즈칸이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이 때부터 몽골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유럽 역사에 새 장이 열리게 되었다.
몽골 제국
테무친은 칭기즈칸이란 칭호를 부여받기 전부터 이미 수많은 몽골의 소부족들을 정복하여 군사적, 정치적인 능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널리 흩어져 있던 몽골인에게 민족적 동질감을 심어 주었으며 그들을 전사로 만들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그런 다음 테무친은 세력 확장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는 중국의 북서쪽에 있는 씨씨아 국을 공격하여 정복했다. 그의 전사들은 고비 사막을 횡단하면서 진격하여 만리 장성을 넘어 1215년에는 중국의 북부 지역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서쪽으로 눈을 돌려 러시아와 페르시아를 공격하였고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까지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들은 무수한 사람들을 살상하였으며 중동 지역의 이슬람 문화의 많은 부분을 파괴하였다.
1227년 테무친이 죽은뒤 그의 아들인 오고타이 칸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거대한 제국은 칭기즈칸의 네 아들에 의해 각각 네 부분으로 나뉘어 다스려졌다. 오고타이 칸은 중국, 고려, 몽골 그리고 티베트를 통치하였다. 3개의 오아국은 동서투르케스탄, 메소포타미아의 페르시아와 소아시아 일부 그리고 남부 러시아 지역에 각각 세워 졌다. 이 한국들의 이름은 각각 차가타이 한국, 일 한국 그리고 킵차크 한국 이었다.
매우 빠르고 무자비했던 몽골 제국의 정벌은 계속되었다. 몽골 군단은 위대한 오고타이 칸의 통치하에 더욱 발전하였다. 그들은 유럽 문명의 본거지를 위협하면서 헝가리와 폴란드로 진격하였다.
러시아는 1237년~1238년 혹독한 겨울에 몽골 군에게 짓밟혔다. 키예프의 고대 도시는 1240년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1234년에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의 군대가 중국의 동부와 남부 지역을 정복하였다. 1279년~1368년 까지 몽골 제국은 중국에 원 왕조를 세우고 중국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1241년 몽골 제국의 지도자 오고타이 칸이 죽자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며 나아가던 몽골군의 진군은 돌연히 끝나 버렸다. 몽골인들은 새로운 칸을 선출하기 위해 몽골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들은 퇴각하였고 러시아 국경을 따라 그들의 힘을 강화하였다. 비록 거침이 없는 침략자였던 몽골 제국이었지만 그들은 관대한 통치자였다.
1275년~1292년 쿠빌라이 칸을 수행했던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보고한 대로 몽골인들은 자신들이 정복한 민족에 대해서는 관대하였다. 이에 따라 피정복 민족의 종교와 문화가 번성하였다.
그러나 몽골 제국은 그들 영토 내의 서로 다른 민족들을 통일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정복가로서는 뛰어났지만 행정가로서는 형편이 없었다.
몽골 제국은 표준화된 법률 제도를 가지고 있었고 일찍이 1236년에 지폐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붕괴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1200년대 후반까지 한국들은 몽골 제국을 힘으로 몰아 내면서 더욱 독자성을 갖기 시작하였다. 몽골 제국의 남부 지역에서는 중국이 반란을 일으켜 명나라를 건국하였다.
후에 만주족이 이 지역에 청나라를 세우고 1644년~1911년까지 지배했다. 몽골의 남부 내몽골은 중국의 통치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1691년에는 오늘날 몽골 인민 공화국이 차지하는 몽골의 북부 지역을 중국의 해외 영토로 인정해야만 했다.
청나라가 1911년데 일어난 최소의 중국 혁명으로 붕괴되었을때 몽골은 그들의 독립을 획득할 기회를 잡았다. 지금가지도 몽골 민족이 신봉하고 있는 라마 불교는 이 때부터 활동을 다시 시작했으며 그 들의 최고 성직자 살아있는 부처가 왕으로 추대되었다.
이 때 몽골인들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독립을 선표했다. 그러나 몽골인들을 지원하던 제정 러시아가 1915년 이 땅을 다시 중국에 넘겨 주자 이 새로운 정권은 붕괴되었고 1919년에는 중국에 완전히 합병되었다.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고 이어 내전으로 확대되자 몽골에는 반공산주의 단체가 나타나 몽골 인민당을 창당했다.
몽골 인민당은 독립과 사회 정의를 실현할 목적으로 시베리아에 있던 소련 군대와 접촉을 하였다. 임시 혁명 정부는 1921년 러시아 지역에서 열린 회담으로 세워졌다.
소련군과 몽골군으로 구성된 군대가 이 지역에 침입하여 반공산주의자들을 퇴치하였다. 동년 7월에 친소련 정부가 현재 울란바토르라고 하는 위구르에 세워졌다.
비록 살아있는 부처는 계속해서 집권했으나 그의 권위는 엄격히 제한되었다. 1924년 친소 정부는 당의 이름을 몽골 인민 혁명당으로 바꾸고 몽골 인민 공화국을 선포했다.